휴직 후 좋은 점은 운동과 독서에 사용할 에너지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휴직 하고 읽은 첫 번째 책, 한국이 싫어서.
나는 한국이 싫어서 미국으로 가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나와 비슷한 세대의 친구들이 이민을 선택하게 되는 과정에 호기심이 생겨서 집어들었다.
국적은 내가 선택하지도 원하지도 않았지만 나에게 부여된 채 태어난 것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며 나의 삶과 나의 정체성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이 세계의 다수가 추구하는 삶의 궤도가 은연중에 구성원들에게 강요되며, 그러한 궤도에 순응하는 삶은 열정과 끈기와 인내로 포장되고 궤도를 이탈하는 선택은 패배자이자 낙오자로 취급받는다.
이민은 그러한 궤도를 깨고 내 삶에 주어진 굴레를 벗어나고자 하는 작업이다. 물론 이민을 가서 시민권을 딴다고 해도 절대 네이티브가 될 수 없고, 영원한 이방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곳의 환경이, 문화가, 삶의 방식이 내가 추구하는 행복의 방식과 일치한다면 그 모든 리스크를 감내해 보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파블로라는 펭귄의 동화를 언급하는데, 나도 오래전 어린 시절에 읽었던 기억이 덕분에 되살아났다. 추위를 싫어하는 펭귄 파블로. 파블로는 어떻게든 추운 고향을 떠나 따뜻한 곳으로 가고자 노력하는 펭귄이다. 현실속에 파블로가 있다면 그의 친구가, 가족이, 선생님이, 선배가, 직장상사가 그에게 왜 그렇게 철없이 구냐고, 이젠 어른스럽게 현실적으로 살아가라고 수없이 타박했을 것이다.
2021년에 같은 팀에서 근무했던 분 중에 한국인이지만 국적은 홍콩인 분이 계셨다.
남편도 홍콩사람인데 남편은 홍콩에서, 본인은 한국에서 근무를 하시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 퇴사 후 홍콩으로 다시 떠나셨다.
직무는 사업 직군이었고, 내 기억에 업무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처리해오셨던 것 같다.
그 분의 소식을 최근에 들었는데, 퇴사 후 홍콩의 한 항공사 승무원을 거쳐 지금은 모 은행에서 근무한다는 소식이다.
한국은 경력직의 수요가 많아서인지, 다들 한 우물을 오래 파는 경향이 있고 전혀 다른 새로운 분야로의 진출이 쉽지도 않거니와 많은 리스크를 져야 하는 구조인데 확실히 외국의 경우에는 한 사람이 본인의 의지에 따라 다양한 커리어를 오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한국의 20대들이 진정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고 그것으로 진로를 정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한번의 선택으로 평생의 커리어가 결정된다는 중압감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일단 해보고 시시하면 언제든 그만두고 다른 분야에도 도전해볼 수 있고, 회사 또한 다른 도메인을 경험한 인재에 대해서 오픈 마인드를 보여주는 유연한 조직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을까.
우선은 나부터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삶의 태도를 찾아야겠다.
다시 한 번, 나는 한국이 싫어서 미국으로 가는 것이 아니지만,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나의 진짜 행복을 혹시나 마주칠 수도 혹은 그것에 대한 작은 힌트라도 얻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한국을 떠난다.
물론 한국에서의 삶이 진짜 행복하다는 걸 깨닫고 돌아온다고 해도 그것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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