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미국 기준 크리스마스 이브였고, 샌디에고 날씨는 우중충했다. 사실 샌디에고에서 우중충한 날씨를 경험하는 날은 극히 드물지만, 살면서 가장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나로서는 흐리고 우중충한 분위기가 나름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연상하게 해주어서 나쁘지는 않았다.
여기서도 뉴스를 챙겨 보고 있지만, 12월 3일 이후 한국의 상황은 한치앞을 예상하기 힘든 불확실성에 계속해서 갖혀 있는 것 같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여유를 가지고 주변 사람들과 서로를 격려하고 희망을 찾아야 하는데, 어쩌면 크리스마스가 정확히 그런 날이 아닐까 싶다.
크리스마스에 눈도 오지 않고 20도를 오르내리는 기온도 낯설지만 또 한가지 낯설었던 점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흑인 산타를 만났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자라는 동안 내 오랜 스테레오 타입의 산타는 언제나 백인이었는데, 흑인 산타를 처음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멈칫하게 되는걸 느꼈다.
한국에서 흔히 쓰던 말중에 ‘국룰’ 이라는 단어가 있다.
모두가 공감하고 똑같이 생각하는 개념이라는 뜻이다. 국룰이 어느 분야에나 존재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들의 생각이 비슷하거나 일치하는 포인트가 많다는 뜻일 것이다.
(다만 정치 분야는 예외인 것 같다. 국룰을 떠나 상식 조차 없어 보인다.)
국룰이 많은 사회는 좋은 것일까. 국룰 만큼이나 우리 사회가 좋아하는 단어가 통합 아닌가. 국룰이든 통합이든 모두가 한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는 의미인데, 물론 거기에는 좋은 점도 있겠지만 그만큼 사회 전체적인 사고가 경직되어 있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IT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한국에서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한국의 IT 회사들은 왜 전부 내수기업 뿐이냐는 조롱(?)이었다. 전통적인 한국의 대기업들은 국내 매출보다 해외 매출이 월등히 많으니 이에 빗대어 우물안의 개구리가 아니냐는 조롱이었을 것이다. 인정하는 부분도 많다.
현재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서비스들은 이미 글로벌하게 자리잡은 서비스들의 카피캣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코어 기능은 개발하지 못하지만 BM만 특화해서 서비스를 한다. 국내 시장에서 벗어나서 서비스를 글로벌화 하기가 어려운 이유이다.
이러한 현실의 이면에는 신규 서비스 런칭이든 창업이든 이른바 ‘국룰’ 에 따라서 진행해야 하고, 그 안에서 자기들끼리 그렇게 해도 된다 아니다를 평가하고 따지고 드는 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면 안되는데 라거나 그렇게 하면 돈 안된다 류의 근엄한 조언들. 물론 이것들은 내가 속해있던 집단에서 느꼈던 것에서 기인한 일반화의 오류 일수도 있고, 진심으로 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길 바라지만.
아무튼 한국에서도 흑인 산타가 많이 탄생하길 바란다. PC주의에 경도된 놈이라 비난해도 상관없지만, 그러한 다양한 개성과 색깔이 모두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존중받을때 지금 우리사회가 갖고 있는 여러가지 갈등과 정체가 해결될 실마리를 찾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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