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다사다난 했던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특히나 12월은, 45년만의 계엄으로 시작해서 너무나도 안타까운 참사로 마무리 되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눈을 감으면 사고 장면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웠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살아나가야 한다.
지금 당장은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불투명해 보이겠지만, 자연이 언제나 무한한 회복력을 통해 재생하고 질서를 바로 잡아 나가듯이 우리의 세상도 버릴 것은 버리고 정리할 것은 정리하며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는 법이다.
매년 한 해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해의 계획을 세우는 작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2024년의 나는 무엇보다 미국에 오기 전과 후로 나눌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한국에서의 생활을 되돌아보면 아무래도 현실적인 문제에 많이 매몰되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최근 몇 년간의 목표는 대부분 개인 커리어의 성장과 더 많은 금전적인 보상을 향해 있었다.
직장 생활을 10년 동안 하면서 목표 달성을 위해 대학원도 졸업했고, 이직을 통해 연봉 테이블을 업그레이드했다.
체 게바라가 말했던,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라는 말을 나 자신의 변명을 위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했다. 난 지금 리얼리스트가 된 거지. 그렇지만 가슴 한 켠에 불가능한 꿈도 품고 있잖아. 지금 이 시기에 만들어 놓은 커리어와 자산으로 언젠가 나는 세상을 바꾸기 위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거야.
그러나 모든 것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오게 된 것은, 그 '언젠가'가 도대체 언제일까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돈과 지위의 속성은 끊임없이 그 다음 단계를 제시한다는 데 있다. 외제차도 실컷 몰아 봤고 전국 최상위 가격대를 자랑하는 소위 대장 아파트에서 살아봤지만, 거기에 만족은 없었다. 언제나 그 다음 퀘스트가 주어졌다.
허울 좋은 껍데기 속에서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무한한 에너지 낭비, 그걸 견뎌내는 것이 인생이라면 그것만큼 공허한 것이 없다고 느꼈다. 내가 죽고나면 전) 외제차 차주 전) 대장 아파트 입주민으로 비석에 남겨질 삶은 얼마나 초라한가. 그러던 와중에 개인적인 사유로 인해 미국행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고, 나는 주저없이 모든 것을 멈추고 미국행을 결심했다.
미국에 와서 깨달은 첫 번째 사실은,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재발견 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약간의 관종끼가 있었다. 내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나의 모습은 남들이 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유일한 포지션을 선점하는 일이었다. 수련회에 가서 혼자서 여자 아이들 숙소에 침투 한다던지, 방송부 활동을 하면서 점심 음악방송 신청곡을 틀어주거나 친구들을 방송실에 데려가 우리반 스피커에만 들리도록 마이크를 켜주는 등.
대학때도 마찬가지였다. 선배들이 강제하는 과 활동이나 학회 활동은 거의 참여하지 않았고, 혼자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을 읽거나 영화 DVD 를 하루종일 보거나 날씨가 좋은 날에는 전국 방방곡곡 여행을 떠났다. 동기들은 그런 나를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부르며 대리만족 하곤 했다.
물론 이러한 반사회적인 방향이 아닌, 역시나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전교 1등 같은 그런 좀 더 바람직한 목표를 향해 나의 기질이 연결되어 있었다면 인생이 달라졌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건 누구나 되고자 노력하는 한마디로 특색없는 목표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간에 나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직장생활 10년간 나는 그런 나의 본성을 잊고, 너무 열심히 살았다. 그것도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것과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그래서 어떤 성취를 하더라도 그렇게 기쁘거나 만족감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에 온 지 일주일만에 내가 더이상 평일에 출근하지 않고 주말에 월요병에 시달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지난 10년간 이룬 그 어떤 성취보다 더 큰 만족감을 얻었다.
알고보면 인생의 모든 날은 휴일이라는 말처럼 내가 온전히 내 시간의, 내 삶의 주인이 되었다는 느낌은 느껴본 자만이 안다.
그리고 또 하나 깨달은 점은 내가 얼마나 한국적 사고에 갖혀 있었는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예전에 박명수씨가 어느 대학생에게 조언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아마 해외여행이 주제였던 것 같다. 정확한 사연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박명수씨가 그 친구에게 해 준 조언은 정확히 기억이 난다. 네 나이에 해외여행 가서 좋은 구경을 하는 것도 좋지만, 나라면 그것보다는 그 시간에 일을 하고 경력을 쌓고 돈을 더 모으는 데 집중할 거야.
그 영상을 처음 봤을때 난 전혀 좋은 조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서는 박명수씨의 말을 반박할 딱히 좋은 논리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도 대학생때 해외여행을 다녀왔지만, 그 시간에 다른 경력을 쌓았더라면? 해외여행 비용으로 다른 곳에 투자했더라면? 뭐라도 남는게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런데 미국 생활을 하면서 역시나 그건 좋은 조언이 아니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나였다면 이렇게 조언했을 것이다. 해외여행 적극 찬성이다. 그런데 그 비싼 비용을 투자해서 네 인생에 무언가 의미있는 경험으로 남기고 싶다면, 그 나라 언어를 배워서 가라고. 그 언어가 너무 어렵거나 공부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최소한 영어 정도는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도록 공부하고 떠나라고.
한국에서 나도 해외팀에서 근무를 해왔기 때문에, 업무적으로 영어를 줄곧 사용해왔다. 그러나 실무진들이 사용하는 업무영어의 특성상 상대와는 기술적인 이야기 또는 비즈니스적인 이야기만 나누게 된다. 깊이있는 대화나 생각을 나눌 기회가 딱히 없다보니 영어는 나에게 업무를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 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표현들을 살피다 보니,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어떤 아이가 위험한 비탈길을 아슬아슬하게 달려 내려갈 때 한국의 부모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뛰지마! 위험해." 일단 넌 달려선 안된다는 것.
그런데 미국의 부모들은 열에 아홉 이렇게 말한다. "Please walk." 뭘 하지 말라는 건 없다. 대신 해야 할 것이 있다.
한국은 언제나 하면 안되는 것을 강조해 왔다. 그냥 얌전히 있는 아이가 가장 칭찬받는 사회. 모난 돌은 정 맞으니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사회. 내가 그 사회의 타성에 젖어 있었다는 것은 그 사회를 벗어날 때 비로소 깨달을 수 있다. "Please walk." 이라는 표현을 들었을 때 나는 머리가 띵 하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강조하지 않고 내가 해야 할 일을 강조하는 사고방식. 어린 시절부터 이러한 가치관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서 말이다.
또 하나는 젠더 문화이다. 미국은 공식 성별이 수십 개이다. 그래서 회원가입 시 성별을 기입할 때 남성 여성은 당연하고, 트랜스젠더를 비롯해 논바이너리, 젠더퀴어, 투스피릿, 그외 리스트업 되지 않은 성별까지 주관식으로 작성 가능하다. 몇 달 전에 만났던 로버트가 오늘 만났을 땐 캐서린이 되어 있다. 모임에 남자 둘 또는 여성 둘이 참석하면 높은 확률로 두 사람은 친구가 아닌 커플이다. 한국에서 살아온 나로서는 이러한 상황에 난처한 경험이 제법 있었지만 이제 슬슬 익숙해지고 있는 중이다.
물론 미국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좋은 점만 있을수는 없다. 쓰레기 분리수거 라는 것은 평생 해본 적 없는 주민들. 강아지의 천국 이라지만 그 개들이 온 사방에 대소변을 누고 돌아다니는 나라. 새벽 2시가 됐든 3시가 됐든 자신의 집에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대마초를 해도 아무 죄책감이 없는 나라. 그리고 간간히 들려오는 총기사고까지.
그래서 결국 그 나라를 가장 잘 경험하고 내 것으로 받아들이려면 언어가 필수적이다. 언어를 통해 생각의 미세한 차이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언어라는 도구를 가지고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교류 하면서 그들의 사고방식과 문화속에 직접 부딪혀 봐야 한다. 책이나 유투브를 통해서 보는 간접 경험을 훨씬 뛰어넘는 훌륭한 자산이 되어 줄 것이다.
그래서 2025년 새해의 나의 목표는 또 하나의 외국어를 공부해서 해당 언어로 소통 해보는 것으로 정했다.
일단 샌디에고는 히스패닉과 중국계 친구들이 많기 때문에 스페인어 또는 중국어 중에 하나가 될 것 같은데, 아무래도 중국어 쪽에 먼저 관심이 쏠린다. 고등학교때 제2외국어로 살짝 맛 본 경험도 있고.
이제 밤 11시. 2024년도 이곳 시간으로 딱 1시간 남았다.
언제나 이맘때면 그렇듯이 새해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또 어떤 경험을 하게 될 지 설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마음을 다잡아 보는 시간이다. 아무쪼록 나와 내 가족과 내 친구들 모두가 몸이든 마음이든 어디 한 군데 아프지 않고 건강한 한 해가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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